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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57) 짜장면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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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57) 짜장면 랩소디
  • 손영한
  • 승인 2024.03.12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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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뒤편 서부역 앞, 역사가 깊은 만리동·중림동의 길옆으로 출입문과 창가의 유리창에 메뉴가 붙어있는 소박한 가게들이 있다. 짜장면 25원, 특 30원... 유리창 넘어 손님들이 큰 사기그릇에 담겨있는 짜장면을 계속 저어가며 먹고 있다. 군침을 삼키며 하굣길에 마주하는 만리동 자장면 가게들, 벌써 50년 전의 주변 풍경이다.

마음먹고 들어가 먹어본 짜장면, 일반 국수에 짜장 소스와 주사위 크기의 감자 정도 들어 있는 짜장면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마지막 젓가락에 자장이 튀어 교복에 묻는다. 연신 닦아보지만 얼룩은 더욱 번져나간다. 지금은 큰 도로가 사방으로 연결되어 무척 복잡한 교차로가 되어있다. 서울역 고가 차도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일부 철거되어 휴식공간과 인도교로 활용되고 있다. 봉래동, 만리동, 중림동 등 옛 도시의 추억과 변모를 생각하니 변화가 참 빠르다.

초등학교 입학식, 졸업식에는 어김없이 동네 중국집이 붐빈다. 창 너머 집주인이 면을 뽑느라 “탕, 탕” 내리치는 수타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수십, 수백 그릇의 짜장면이 끊임없이 나온다. 춘장에 네모난 감자, 양파, 작은 토막의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옛날짜장”이다. 입은 물론 코, 뺨에 묻혀가며 서투른 나무젓가락질에 미끄러지는 면을 돌돌 말아 먹던 자장면...

대학시절 지도 교수님과 함께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을지로 인쇄소에서 탈고와 수정을 하면서 저녁 무렵 식사할 때, 나는 다른 메뉴의 유혹을 뿌리치고 짜장면을 주문하니 대학원 형이 ‘간짜장’ 하고 외치다가 교수님의 ‘짜장면’ 소리에 주눅 들린 선배형의 모습이 지금도 웃음 짓게 한다. 이렇듯 짜장면의 추억은 무궁무진하다.

짜장면은 양파·양배추·돼지고기에, 기름으로 튀긴 춘장을 넣어 굵은 국수에 비벼 먹는 한국식 중국요리이다. 모든 사람들의 맛을 충족시키는 요소는 짜장을 기름에 볶는 것에 있다. 여기에 모든 재료를 같이 볶으니 고소하고 달큼한 향과 맛이 배가 된다. 계속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나 무심코 갑자기 당기는 날에 먹고 싶어지는 짜장면... 여기에 대한민국 개화시기에 중국에서 넘어온 조선 화교들이 제물포, 군산 등에 정착하면서 발전된 음식이라는 인문학적 요소도 갖고 있는 음식이다. 지금도 이곳은 중식당의 성지로 고풍스러운 건물마다 여행객의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2010년까지만 해도 ‘자장면’이 표준어였으며 ‘짜장면’과 복수로 사용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느 시인의 “그래도 짜장면이다”라는 글에 “짜장면을 먹자고 해야지, 자장면을 먹자고 하면 영 입맛이 당기지 않을 게 뻔하다‘라고 표현하듯 이제는 짜장면이 표준어가 되었다.

빛에 비치는 전분가루의 작은 반짝거림, 달큼함의 미각, 소스의 갈색빛은 남녀노소 모두를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으며 최근에는 수타 짜장의 경쟁으로 기계가 아닌 손으로 면을 수차례 타격함으로써 반죽 속의 공기를 줄이고 면의 탱탱한 탄력을 유지하는 기술로 면의 굵기도 조절하면서 식도락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또한 식당마다 고명을 달리하는 데 대부분 오이채를 사용하고 지역에 따라 계란부침을 올려 노른자가 터지면서 면을 코팅하여 묘한 맛을 내고, 깐 새우를 얹어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짜장면을 연출한다. 종류도 옛날짜장, 수타짜장, 시골짜장, 손짜장과 조리에 따라 간짜장, 삼선짜장, 쟁반짜장, 유니짜장 등이 있으나 모두 짜장면이다.
 

 

잠실 석촌호수 근처에 ‘오모리찌개’집이 있다. 한쪽 코너에 ’옛날손짜장‘을 내걸고 창 안쪽으로 면을 뽑는 수타 모습을 볼 수 있는 집이다. 면을 수없이 치대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면의 굵기가 불규칙하여 손칼국수 같은 식감이 있는 수타면이다. 소스 농도가 적당하여 쉽게 섞여지면서 큰 양파·양배추의 투박함과 다진 고기의 알갱이가 입속에서 달그락거리면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점잖은 짜장면이다. 여기에 큼직하게 넣은 감자도 맛을 더한다. 모든 재료가 큼직큼직하여 성의 없이 보일지언정 맛은 일품이다. 짜장면 하면 먼저 떠오르는 식당이며 지금은 수타 작업을 주방 안에서 한다.

 

‘강남루’
‘강남루’

 

압구정 골목길에 있는 ‘강남루’라는 식당이 있다. 어느 동네처럼 편한 중국집이나 요리에 대한 내공이 있다. 식당 내 벽에는 ‘지금 드시는 국물은 직접 끓인 한우뼈 육수입니다’라는 자존심 같은 문구가 붙어있는 짬뽕 전문점이지만, 나는 짜장면을 먹는다. 봄 새싹 몇 가닥이 오이채 대신 올려있는 신선함이나 잘 다듬어진 야채가 색깔 좋은 갈색의 소스와 함께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있는 모습이 참 예쁘다. 잘 볶아서 밀도가 높은 걸쭉한 소스, 찰진 면발, 처음 비빌 때의 뻑뻑함이 나중에 마술처럼 부드럽게 변하는 소스는, 순살 고기가 있어 구수하고 담백한 느낌의 간짜장 같은 짜장이다. 주문할 때 들리는 주방의 웍 소리가 매우 흥겹다. 감자 없는 짜장면의 가벼운 느낌이 좋은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물기 없는 단무지가 아삭한 게 깔끔하다.

신사동에 ‘가담’이라는 중국집이 있다. 농도가 짙은 소스와 감자, 고기가 있고 색깔도 조금은 진한 짜장면이 단단해 보이며, 내용물이 이탈하지 않고 면과 하나가 되어 서로 묶여 있는 듯한 느낌으로 흐트러짐이 없는 조화로운 맛을 낸다. 보통 요리 식사 후 후식으로 먹지만 한 그릇 그대로 먹기를 권하고 싶은 음식이다.

아무 때나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도 있지만, 불현듯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는 무조건 ‘꼭’ 먹어야 되는 짜장면! 어느 미식가의 이야기처럼 짜장면 랩소디는 영원히 이어지는 우리의 감성 음식이 되어 지금도 언제 먹고 싶어질지 모르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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