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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뜰에서 온 편지-평범함에 담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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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뜰에서 온 편지-평범함에 담긴 기적
  • 채동균
  • 승인 2023.10.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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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잊는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바람에 꽃잎이 흩어지던 하오의 미풍이 피부에 아직 남아 있다 싶었는데, 벌써 바람이 차갑다. 아직 떠나지 않은 가을의 기운이 조금이나마 공기 중에 남아 있을까 하여 일요일 아침 산책길에 깊이 숨을 들이쉬기를 반복해본다. 부질없는 바람인지, 가을 미풍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차가운 기운만이 가슴 속 가득 담기어 몸이 움츠러든다. 가을이 그렇게 지나갔구나 싶은 생각에 아쉽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가을이겠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이별이 함께 찾아오는 것이 조금은 쓸쓸하다.

한편으로는 다음 해 찾아올 가을은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 모습이 어떠하건 반갑고, 감사하겠지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 시간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가볍게 여기지 않을 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작은 풀꽃 하나도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일상에 주어지는 사소하고 가벼운 모든 존재는 기막힌 인과관계 덕분에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멋진 경험이라는 것이다. 1994년 교통사고를 겪고 일 년 정도 병원 침대 신세를 진 일이 있다. 일 년이라는 시간에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아직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일상’이라는 평범함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기적이다.

사고 뒤 일 년 정도는 다리를 지탱하는 신경이 손상되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일 년 시간을 누워서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지냈는데, 그 상태로 가을을 두 번 맞이했다. 침대를 벗어나면 모든 것이 이전의 평범함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시간을 다시 반년 정도 보내야 했다. 지금에서야 추억거리 한 줌이지만, 한창 젊은 나이에 걷는 일도 어려워지면서 참담한 마음이었다. 재활 치료를 도와주는 선생님이, 어려워도 일상생활 꾸준히 하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어느 날은 마음을 단단히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집을 나서 길 건너 있는 마트에서 김밥을 사 오는 목표로 두근거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 당시 살던 집은 단독을 증축한 이층 주택이었는데 계단이 좁고 가파른 이층이었다. 처음 사용해보는 목발을 짚고는 내려갈 도리가 없었다. 깁스하고 철심을 넣어 두어서 다친 다리를 딛고 써도 된다고 했기에 그 말을 믿고 목발은 저 멀리 던져두고 앉아서 계단을 내려왔다. 대문 앞도 나서지 못했는데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사고 나기 전에는 20년을 뛰어다니며 1분도 안 걸리던 골목 어귀까지 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골목을 돌아 나오면 길 건너에 김밥집이 바로 보였지만, 그 사이에는 육교가 있어서 포기하고, 멀리 있는 길을 돌아서 건널목을 찾아 길을 건넜다. 결국, 김밥을 사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돌아오는 길에 생겼다.

 

김밥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한 번 건널목을 지나야 했는데, 거의 일 년을 쓰지 않던 몸 근육이 힘을 다 쓴 탓에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신경이 돌아오지 않은 다리를 끌고 가려면 성한 다리 힘에 의지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지쳐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건널목을 절반 정도 지나 도로 중앙선 정도에 도착하자 신호가 바뀌었다. 내 사정을 모르는 차들은 중앙선에 서 있는 나에게 경고의 경적을 울리며 지났고 다시 신호가 바뀔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신을 차리고 쓰러지지 않는 것뿐이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은 신호가 바뀌자 내가 한 일은 남은 절반을 빨리 건너기 위해서 기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건널목을 기어서 건너는 내 모습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행인이 쏟아내는 시선에 마음이 저렸다. 다시 집 밖을 나간 것은 그 뒤로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집 앞 김밥 사오기라는 평범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기어 다니면서 쓸린 손바닥에 깊이 아로새긴 나는 아무 일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기적인지를 그날 배웠다. 마음에 작은 생채기는 늘었지만, 작은 상처는 서서히 잊을 수 있었다. 그날 나쁜 일만 있던 것은 아닌데, 집으로 기어오다 지갑을 주워서 집 앞 우체통에 넣었다. 누군가는 그날 내가 기어 다닌 덕분에 소중한 지갑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갑을 우체통에 넣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 기분 좋아하는 내 스스로 모습에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 본 것 같아 너털웃음이 흘렀다.

그러고 보면 모든 상처는 나에게 다시 살아갈 기억이 되어 준다. 상처가 깊어가는 동안에는 고통 때문에 볼 수 없던 것이 상처가 아물며 흉진 자리에 어떻게든 삶은 살아낼 수 있겠다는 각오처럼 남는다. 경험하지 못한 더 큰 환란이 찾아오면 또다시 무너지고 쓰러지길 반복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예전 상처 자리를 손으로 더듬어 만져본다. 흉진 자리에 남은 감촉이 나에게 말해준다. 이번에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설령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져 눈물 흘리고 오랫동안 아파하더라도 언젠가는 분명히 그 끝이 있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상처 자리마다 각인처럼 남아 있어서 잊으려야 잊을 도리가 없다.

아침에 눈 뜨면 매일 찾아오는 평범하고 익숙한, 그래서 어딘가 무료하고, 새롭거나 감사할 것 없는 일상이, 사고 뒤에 나에게는 매일 선물 같은 날이 되었다. 그렇다고 매일 감사할 수는 없었지만, 평범한 하루가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와는 다른 의미라는 정도는 기억하고 살아올 수 있었다. 김밥 사러 모험을 떠났던 그 날, 도로 중앙선에 서서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땀에 흠뻑 젖었던 기억과 김밥담은 봉투를 입에 물고 기어서 건널목을 건너며 얻었던 내 마음의 상처는 같은 어려움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이를 보면 손 내밀 수 있는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지나고 보면 슬프고 불행한 일 중에 영원히 아픈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평범함에 담긴 기적을 기억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감사할 수 있다면 말이다. 비바람 맞아도 우리는 모두 아름답다.

비 바람 불어 흙탕물 뒤집어 썼다고
꽃이 아니더냐
다음에 내릴 비가 씻어준다

-<상실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글·사진 채동균(혜윰뜰도시농업공동체)

 

채동균…

영국의 시인 William Wordsworth를 동경하여 영어영문학
을 전공하였으나, 사회 생활을 IT 기업에서 시작하는 비운
을 겪으며, 평생 생업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우연한 계기로 주민대표를 4년간 맡은 인연
으로 혜윰뜰 도시농업공동체 대표가 되었다. 생업과는 별
개로 마을에서는 주민공동체 활동, 문화강좌 프로그램 기
획 등으로 이웃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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