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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뜰에서 온 편지-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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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뜰에서 온 편지-기다리는 마음
  • 채동균
  • 승인 2023.03.05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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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주던 혜윰뜰 오동나무, 지금은 없다. 오동나무의 학명은 Paulownia coreana Uyeki 이다. coreana는 한국특산의 수종이라는 의미이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주던 혜윰뜰 오동나무, 지금은 없다. 오동나무의 학명은 Paulownia coreana Uyeki 이다. coreana는 한국특산의 수종이라는 의미이다.

어디서 씨앗이 날아왔을까? 어쩌면 20년 전 누군가 미래를 꿈꾸며 조용히 심어둔 것인지도 모를 오동나무 한 그루가 혜윰뜰 텃밭에는 있었다. 오동나무는 한국이 원산인 나무로 겨울에 잎이 지는 키가 큰 나무다. 혜윰뜰 텃밭 어느 도시농부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자녀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성장이 빨라서 심은 뒤 10년 정도면 목재로 활용할 수 있어서, 자녀가 성장해서 가정을 꾸릴 때 심어 놓은 오동나무를 베어서 가구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이야 좋은 가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가구가 흔치 않았던 시대에 가볍고 무른 오동나무는 분명 가구로 만들기 좋은 목재였다.

한편으로 오동나무는 소리가 아름다운 특징도 있다. 가벼운 이유와 소리가 아름다운 것이 같은 이유인데, 오동나무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빈 공간이 많다. 그래서 소리의 울림이 풍부하여 그 소리가 일품이다. 자연스럽게 울림으로 소리를 내는 가야금이나 장구와 같은 전통 악기를 만드는데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과거에는 비 오는 날 신는 나막신의 재료였다고 하니 가히 일상생활 속에서 널리 사랑받는 나무였음이 틀림없다. 오동나무는 과거의 영광이 서려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혜윰뜰에서 20년은 그 자리를 지켰을 법한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텃밭을 가꾸기 이전부터 모든 시간을 지켜봤을 오동나무를, 처음에는 그 자리에 있음을 알지 못했다. 텃밭을 준비하던 2019년 봄, 일요일 아침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에 밭을 만들 자리에 쌓여 있는 돌이라도 옮겨볼 생각으로 텃밭을 찾았다. 돌 고르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이 촉촉해지면서 이윽고 봄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맑은 하늘이었기에 비 올 기미를 눈치 채지 못했던 나는 아무 준비 없이 텃밭에 올랐기에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마침 오동나무 아래 젖지 않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 처음으로 오동나무가 그 자리에 있음을 알았다. 산자락에 놓여 있는 수많은 나무 사이 똑같은 나무 한 그루일 뿐이었던 존재가 빗속에서 비 피할 곳을 마련해준 인연으로 오동나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날 이후로 비 오는 날에는 일부러 텃밭을 찾곤 했다. 20년 동안 드넓은 가지와 커다란 잎을 가득 안고 있는 오동나무는 훌륭한 우산이 되어 주었고, 그늘을 선물해주었다. 큰비 내리는 날이면 가끔 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한 방울 빗물을 얼굴로 맞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구름 속에서 짧은 여행을 시작한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불청객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나중에는 텃밭에 그늘막이 놓이면서 비 오는 날 비를 피할 수 있는 훌륭한 쉼터가 생겼지만, 그늘막이 생긴 날 이후에도 오동나무 아래를 더 좋아한 것은 예상할 수 없는 빗방울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 소중한 것과는 언젠가 이별을 맞이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오동나무와의 인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오동나무가 서 있는 땅이 너무 무른 것이 문제였다. 20년 동안 완전히 커버린 오동나무는 비탈진 땅 위에 서 있었는데 흙을 쌓아 만든 작은 언덕 같은 곳이라 나무가 세월 속에서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오동나무를 지켜보려 흙을 돋아주고 노력해봤지만, 기울기 시작한 나무를 지탱하기에는 부족했다. 기울면서 약해진 탓인지 어느 날에는 센 바람 뒤에 큰 가지들이 텃밭 곳곳에 떨어져서 작물까지 함께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오동나무가 기울어지는 곳은 행인이 다니는 길이었기에 안전을 위해서 베어내자는 것으로 모두의 의견이 모였다. 베어내기 전날 저녁, 나는 혼자 텃밭에 올라 조용한 작별인사를 오동나무에 건넸다.

오동나무 베어진 자리 주변에는 작은 풀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늘 그늘지었던 동안에는 충분히 빛이 들지 못하여 자라지 못하던 새로운 생명이 오동나무 떠난 뒤 자라기 시작한 것 같다. 하나의 생명은 졌지만, 그 크기만큼의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는 것을 보니 자연 이치란 늘 한결같다는 생각이 든다. 희생의 가치만큼이나 되돌려주는 그 법칙을 철저히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힘이 느껴진다. 오동나무는 그렇게 쓰러져갔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같이 베어냈던 단풍나무의 남은 그루터기에서 어린줄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마치 상처받고 베어진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새롭게 싱싱한 줄기와 잎을 내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단풍나무 잘린 그루터기에 어느 날 어린줄기가 나기 시작했다
단풍나무 잘린 그루터기에 어느 날 어린줄기가 나기 시작했다

 

‘생명이란 잘리고 베어진 정도로는 포기를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 그루터기에 돋아나는 어린줄기를 보면서 새로운 사실도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오동나무가 베어져 넘어질 때 느꼈던 안타까움은 나무가 주던 그늘막이 아쉬워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생명을 가진 것이 사라져가는 것에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십 수 년 전에 중병으로 생명이 스러지는 경험이 있었는데, 치료과정에서 세상과 단절되고, 사회생활 내내 목표로 했던 많은 일이 그대로 저물어가는 경험을 했던 나는 어쩌면 쓰러지는 오동나무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어린줄기를 내는 생명을 보면서 그 속에서 내 모습의 희망도 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의 글쓰기도 어린줄기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일상 속에서도 씨앗 하나 심는 동안 찾아오는 안도감이 내일을 시작하는 힘이 되어 준다. 나의 씨앗도 언젠가 큰 나무로 자랄지 심어 놓은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할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 기다리는 마음 그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까. 언젠가 인연이 되어 잘린 오동나무와 만날 수 있다면 감사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당신이 선물한 쉼터에 위로받은 그 순간 참 행복했다고.

 

잘린 오동나무 그루터기에도 언젠가는 새싹이 돌아올지 기다려진다.
잘린 오동나무 그루터기에도 언젠가는 새싹이 돌아올지 기다려진다.

 

잘리고 베어진 모든 것이 언젠가 새로운 어린 줄기를 내어 그 생명을 아름답게 이어가기를 조용히 소망해본다.

 

글·사진 채동균(혜윰뜰도시농업공동체)

 

채동균…

영국의 시인 William Wordsworth를 동경하여 영어영문학
을 전공하였으나, 사회 생활을 IT 기업에서 시작하는 비운
을 겪으며, 평생 생업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우연한 계기로 주민대표를 4년간 맡은 인연
으로 혜윰뜰 도시농업공동체 대표가 되었다. 생업과는 별
개로 마을에서는 주민공동체 활동, 문화강좌 프로그램 기
획 등으로 이웃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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