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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삼성까지... 포켓몬에 점령당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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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삼성까지... 포켓몬에 점령당한 대한민국
  • 유인근 국장
  • 승인 2022.04.22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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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Z 플립3 포켓몬 에디션.(삼성닷컴 캡처)
갤럭시 Z 플립3 포켓몬 에디션.(삼성닷컴 캡처)

[푸드경제 유인근 편집국장] "우리가 어정쩡하게 하니까 한국이 기어오르는 것 아니냐..."

얼마전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일본 보수우익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극우 여성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61)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한 말이다. 다카이치는 앞으로 총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인물이라,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말이 주는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카이치는 자신이 차기 총리가 되더라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한국의 신사참배 반대 의사를 "기어오른다"는 속된 표현을 써가며 비하했다. 자신들이 벌인 전쟁의 피해국인 이웃나라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듣는 순간, 일본의 정치인들이 아직도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22일 일본 국회의원 100여 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다카이치는 물론이고 아베 전 총리까지 기다렸다는 듯 동참했다. 신사참배뿐 아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 출범 후 처음 내놓은 일본 외교청서(외교백서)는 또다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쳐 외교분쟁을 일으키는 중이다. 정권교체기인 우리나라를 향한 일본의 도발이 갈수록 거세지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즈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바로 '포켓몬빵' 때문에 시작된 포켓몬 열풍이다. 

때아닌 포켓몬 열풍은 SPC삼립이 20년 여만에 재출시한 '포켓몬빵'으로 인해 점화됐다. 빵안에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넣어서 파는 '유치한' 상술에 홀려 소비자들이 몰려 품절대란이 벌어지고 오픈런 현상까지 벌어져 세계적 토픽감이 됐다. 빵을 빵으로 보지 않고 스티커로 본 일부 소비자들은 급기야 빵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스티커만 챙기고 '만행'도 저질렀다. 그런데도 SPC삼립은 기존 포켓몬빵보다 더 비싼 '포켓몬빵 시즌3'까지 새롭게 출시하며 한번 올라탄 말잔등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빵으로 승부해보려는 빵장사의 자존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SPC삼립이 터트린 물꼬가 포켓몬 열풍으로 번져 유통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잠깐 굴려 쉽게 돈을 벌겠다는 구시대적 열풍에 굴지의 대기업들까지 가세했다. 업계를 가리지 않고 포켓몬스터를 상품에 접목하는 분위기다.    

롯데마트 토이저러스는 지난 14일 포켓몬스터 랜덤 스티커가 들어있는 포켓몬스터 스낵 3종을 출시했다. CU는 포켓몬 홀로그램 씰을 담은 냉동간식을 멤버십 앱 '포켓CU'에서 예약 판매하고 있다. 포켓몬 '치즈너겟'과 '치즈핫도그' 총 2종으로, 해당 상품에도 역시 20여종의 포켓몬 홀로그램 씰이 랜덤으로 포함돼 있다.

충격적인 것은 이 열풍에 삼성까지 가세했다는 사실. 삼성전자는 일본 닌텐도와 손잡고 오는 25일 자정부터 '갤럭시Z 플립3 포켓몬 에디션' 한정 판매를 국내에서 실시하기로 하고 공식 홈페이지인 삼성닷컴에서 오는 24일까지 포켓몬 에디션 출시 사전 알림 신청을 받고 있다. 공식적인 출고가나 물량 등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한정판 굿즈들이 대거 포함된 만큼 갤럭시 Z 플립 출고가인 125만4000원보다는 높은 가격이 책정될 공산이 크다. 이로 인해 한때 코흘리개들의 수집품에 불과했던 포켓몬카드가 명품의 반열에 오르는 모양새다. 

이 소식에 반가움보다는 굳이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까지 나서서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낼 필요가 있었는지 안타까운 심정이 앞섰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노재팬(No Japan)’(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야기한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당시 반도체 부품을 구하지 못해 가장 애를 먹었던 기업 아니었던가. 

포켓몬스터는 일본 애니메이션이고 저작권은 100% 일본 기업에 있다. 막대한 로열티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부는 포켓몬 열풍에 일본 기업은 고려짝 캐릭터를 앞세워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면서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챙기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쓰리다. 

포켓몬빵이 야기한 포켓몬 열풍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다. 무엇보다 '노재팬'에 대한 암묵적인 동침의식을 너무 쉽게 무너트리고 있다. 한때 거의 사라졌던 일본 맥주 수입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 일부 소비자들은 일본 제빵업체 다이이치빵이 생산하는 포켓몬빵을 구하려고 일본 직구 시장까지 손을 뻗고 있다. 이에 일본 언론들은 "노재팬은 끝났다"며 한국을 조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일본 정치인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존심보다 이윤을 앞세운 한국기업의 얄팍한 행태를 보면서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겨대고 "기어오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아닌지...

어린시절 추억은 그저 추억으로 남아야 아름다운 법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해가 될 수 있다. 문화도 아니고 혁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업의 상술에 말려 산만한 덩치의 어른들이 철지난 스티커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는 좀 슬퍼지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장삿꾼은 돈이 최고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자존심도 버리고 포켓몬 열풍을 부추기는 이들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며 ESG 강조한다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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